📑 목차
플라스틱 포장 대신 내 용기를 들고 필요한 만큼만 담는 제로웨이스트 쇼핑. 리필스테이션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현실적 장단점과 삶의 변화, 그리고 불편함 속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플라스틱 쓰레기 속에서 새로운 소비 방식을 찾다
나는 매주 장을 볼 때마다 쌓이는 포장 쓰레기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제를 사면 투명 비닐에 한 번, 상표 포장으로 한 번, 또 상자 속에 다시 들어가 있다.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쓰레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느 날 분리수거를 하다가, 배출된 플라스틱만 봐도 내 소비 습관이 보였다. 그때 문득 ‘포장 없이 물건을 살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 검색하던 중 ‘리필스테이션(Refill Station)’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포장된 제품 대신, 필요한 만큼만 덜어서 담는 방식으로 판매하는 친환경 매장이었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주말을 이용해 서울 도심의 작은 리필스테이션을 찾아갔다. 그 첫 경험이 나의 소비 습관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1. 리필스테이션 첫 방문: 준비에서 구매까지의 설렘
리필스테이션에 가기 전, 나는 집안을 한 바퀴 돌며 깨끗한 유리병과 빈 플라스틱 용기를 모았다. 꿀을 담았던 유리병, 다 쓴 세제통, 고추장 용기까지 새 역할을 맡았다. 모든 용기를 깨끗이 씻어 건조하고, 용도별로 라벨을 붙였다.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부터 이미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공기부터 달랐다. 형광등 대신 따뜻한 전구색 조명이 비추고, 통유리 안에는 다양한 액체 세제와 곡물이 담긴 유리 통이 줄지어 있었다. 세제, 주방세제, 린스, 천연 식초, 식용오일, 곡물, 견과류, 건조 과일, 심지어 고체 치약과 천연 화장품까지 있었다. 직원은 내 용기를 먼저 무게로 측정하고 ‘빈 용기 무게’를 기록해줬다. 나중에 계산 시 그 무게를 빼고 순수한 내용물 무게만큼 가격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먼저 주방세제부터 덜어봤다. 펌프를 눌러 액체를 내 용기에 담는 순간,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투명한 세제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진짜 내가 선택한 소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제의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었고, 점도나 색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마트에서는 광고 문구만 보고 샀지만, 여기서는 오롯이 제품 그 자체로 판단할 수 있었다.
2. 리필스테이션의 현실적인 장단점
리필스테이션의 가장 큰 장점은 포장 쓰레기 감축 효과였다. 평소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출하던 플라스틱 쓰레기봉투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었다. 쓰레기통이 텅 비어 있는 날이 많아졌고, 분리수거 스트레스도 확실히 줄었다. 무엇보다 ‘버리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보이니 성취감이 생겼다.
또한 필요한 만큼만 담기 때문에 낭비가 거의 없었다. 세제를 미리 쟁여두던 습관이 사라지고, 생활 공간이 깔끔해졌다. 제품을 아껴 쓰는 습관이 생기면서 소비 자체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지출 관리도 쉬워졌다. 물건이 줄어드니 머리도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리필스테이션은 대형마트처럼 곳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일부 지역에만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또 일부 품목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원가가 높아 일반 제품보다 10~20% 정도 비쌀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비용을 ‘환경에 대한 기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몇 달이 지나자 쓰레기봉투, 일회용품, 불필요한 세제 소비가 줄면서 결과적으로 지출은 큰 차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얻는 만족감이 크다. 물건을 담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불필요한 소비가 줄고, 진짜 필요한 물건만 선택하게 된다.
3. 리필스테이션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면서 나의 일상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이제 커피를 살 때는 텀블러를 챙기고, 배달 대신 직접 장을 보는 횟수가 늘었다. 회사에서는 개인 머그컵을 사용하고, 도시락에는 랩 대신 실리콘 덮개를 사용한다. 처음엔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복될수록 그 불편함이 일상이 되었다.
가족들도 변화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인 딸은 학교 급식 시간에 개인 수저 세트를 챙긴다.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리필스테이션을 방문한다. 곡물 코너에서 직접 덜어 담은 현미로 밥을 짓고, 고체 치약으로 양치하면서 서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나만의 작은 실험이었지만, 이제는 온 가족의 습관이 되었다.
리필스테이션을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오래 쓰는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깨진 그릇을 버리기보다 금으로 이어 붙이는 ‘킨츠기(kintsugi)’ 같은 수리 문화나, 낡은 옷을 고쳐 입는 업사이클링 작업에도 눈이 갔다.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관계 맺는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했다.
4. 불편함 속의 진짜 자유: 소비를 다시 생각하게 하다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면 처음엔 확실히 시간이 더 걸린다. 용기를 준비하고, 세제를 덜고, 무게를 재고, 계산까지 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바로 소비를 ‘의식적으로 만드는 힘’이다. 마트에서는 무심코 카트를 채우지만, 리필스테이션에서는 “내가 무엇을, 왜, 얼마나” 사는지가 분명해진다.
처음에는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자유를 줬다. 필요 이상의 소비에서 벗어나고, 물건보다 시간을 더 아끼게 되었다. 불필요한 포장이 줄어드니 집안이 가벼워지고, 쓰레기를 버릴 때의 죄책감도 사라졌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반복하는 삶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리필스테이션은 불편한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다
리필스테이션은 단지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소비 습관을 배우는 실험실이자, 내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감하게 하는 공간이다. 처음엔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마트 대신 리필스테이션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조금 느리다. 하지만 그 길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세제를 덜며, 용기를 들며,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의 소비가 내일의 지구를 가볍게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 나는 비로소 진짜 자유로운 소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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